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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

Vaness™ ♡ 2012. 12. 1. 18:07

 

안방 TV가 빛나는 밤에 (연이말2)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이 곳은 무조건적으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곳이 아닌 올바른 비판을 지향하는 카페입니다.


 

 

故 김수근 (1931. 2. 20 ~ 1986. 6. 14)

 

<그의 대표적 건축물>

 

88올림픽 주경기장
워커힐 호텔의 힐탑바
서울 남산의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영맹)의 본부-자유센터
타워호텔
육사 교훈 탑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국립부여박물관
세계 박람회(엑스포) 한국관
청계천 3.1고가도로
국립청주박물관
서울의 종합문예회관(현 아르코 공연장 및 미술관)
세운상가
이란 엑바탄 주거단지
국민투자금융 본사
주 인도한국대사관
주한미국대사관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
주미 한국대사관저
대법원 종합청사
치안본부청사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라는 허명

이 글은 고인(故人)이 된 건축인 김수근의 윤리문제나 과오 실책에 대한 문제 제기 차원을 넘어서, 그가 정작 '건축가'인가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묻는 글이다. 까닭 없이 그를 깎아내릴 뜻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의 실체를 잘 모르고 긴

시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떠받들고 대우하는 한국의 사회 문화적 태도, 특히 건축계의 '김수근 신화화' 미신

(迷信)에는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분명하게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인권도시' 광주에 '김수근 아트 스페이스'?

 

 

얼마 전에 '인권도시' 광주를 다녀왔다. 광주시는 5.18민주화항쟁을 문화적으로 기리고자 시 재정을 기금으로 출연하여

'광주문화재단'을 만들었다. 문제는 신축된 문화재단 건물 바로 옆, 시 문화재단이 관리하는 '김수근 아트 스페이스'라는

명칭으로 큰 간판을 내건 건물의 이름에서 '김수근'이란 이름 석자가 과연 5.18 광주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 민주

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인권도시 광주'에 합당한 것인가? 바로 즉답을 하자면, 나는 말한다. '크게 틀렸다, 이건 아니다'라고.

 

반인권 독재정권의 사고(思考)를 건축으로 구현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는 김수근에 대해서 알되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건축인 김수근이야말로 철저하게 반민주주의

반인권의 독재정권에 협력하면서 독재자의 사고를 건축에 구현하여 그의 건축적 성과물을 이룬 건축인이다.

 

'김수근' 이름을 내세워 "문화관광의 명소로 만들어 줄 것으로 크게 기대"한 광주시는 당장 건물의 이름을 고쳐야 한다.

남긴 건축물을 부술 필요는 없겠지만, 설계한 사람이 누군가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과 반독재 반인권 건축인의 이름을 기념

하는 것이 과연 '인권도시 광주'에 합당한가, 그 여부는 따졌어야 옳았다. 광주가 어떤 도시인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피를 흘린 도시다. 군부독재의 반인권 고문전용 건물을 설계 건축한 이의 이름 '김수근'을 광주에서 기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발독재 시대 전횡(專橫)의 건축인

군, 경찰, 민간, 정부 부서할 것 없이 건축주가 두루 넓은 것이 김수근 건축의 특징인데, 특히 개발시대 독재 정권이 발주한

대형건축물 위주로 설계하면서 급기야는 대규모 국가 건설기획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개발독재정권의 '한국기술개발공사'

의 대표이사까지 맡아 여의도 개발, 한강개발, 남산개발, 서울 도심개발 등 무수한 개발공사를 하게 된 것은, 독재정권과

의 유착으로 개발독재시대 대표 건축인으로 그가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던 것을 뜻한다.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인

 

 

 

여기에 결정적인 반인권 반문명의 건축인으로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 건축이 바로 서울 용산구 갈월동 88번지,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건물이다. 현재는 경찰청 소속 인권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공포의 공간을 극대화한 설계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누구든지 취조 고문을 당하기 위해 건물에 강제로 끌려온 이들이 건물 공간으로 들어서면, 양팔을 포박
당하거나 억센 손

아귀에 이끌려 철제 계단을 오르거나 층 표시가 없는 승강기에 갇혀 5층으로 올라가면, 길고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어긋나게 배열된 철문들을 지나 칸칸 독방 철문으로 끌려들어 갔다. 문들의 어긋난 배치는 혹시나 문이 열렸을 때 피의자

들이 서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배제하기 위한 처리였으며 동시에 고문이란 예측할 수 없는 정서적 돌연성을

엇각의 벽으로 마감해 공포의 공간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고문당하는 사람의 비명이 복도에 공명으로 울린다.

 

 


▲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 열사의 고문사망 현장은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입구를 유리창으로 막아 전시 중이다. ⓒ김상수

 

1976 년 당시 김치열 내무부장관의 이름으로 공사가 발주됐고 전두환 말기에 경찰로부터 그곳에서 폭행과 전기고문, 물

고문 등을 받다가 죽임을 당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1987년 1월 14일 사망, 당시 23세) 열사의 사망 현장.

 

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1985년 이곳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하고 숱한 민주인사들이 고문받던 장소.

이 장소에서의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당시 고문타살을 은폐하려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종말에 기폭제가 됐다.

 

 

5층은 현재 故박종철 열사가 고문치사 당한 509호실만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

故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당시 이근안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맨 왼쪽 515호실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건축계 시비(是非)에 대하여

김수근은 한국건축계 거대한 권력 체계 중심에 있었다. 개발독재 권력과 결탁한 그의 무소불위는 건축계는 물론이고 60년대 초반

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문화계 전반의 권력이었다. 오늘날 그의 후배와 제자들 상당수가 그의 과거 권력에 빚지고 있다. 따라서 그

들은 계속해서 '김수근 신화'를 만들어내야 만 그들의 건축현실도 영위된다.

여기에 건축계 주장처럼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이 사용하게 될 것을 알았다 해도 나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 않았겠느냐", "건물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비난받을 사항이지 건물 자체를 두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라는

식의 주장은 건축 설계 실재의 구현인 현장을 크게 간과한 틀린 얘기이며, 건물의 용도를 설계 이전에 사전인지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치밀한 공간 분할과 배치를 할 수 있었는지,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이것부터 먼저 답해야만 한다.

 

문화재를 뜯어 건축 석재로

 

▲ 서울 남산,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자유센터' 도로변 긴 석축(石築)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자신의 건축적 성취를 위해서는 문화재도 단순히 석재로 보일만큼 폭력적인 사고였음

을 엿본다. ⓒ김상수

 

더하여 나는, 그가 제정신을 가진 '건축가'였는지도 의심한다. 그가 지은 서울 남산,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자유센터'

도로변 긴 석축(石築)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2007년 10월 문화재청은 서울 타워호텔 부지 내 서울성곽 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1964년 자유센터

(당시 반공센터)를 설계 건축한 김수근은 서울성곽의 성벽의 산 능선을 강제로 깎아내어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성벽을

해체하여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한 것이 다. 자신의 건축적 성취를 위해서는 문화재도 단순히 석재로 보일 만큼 폭력적인

사고였음을 엿본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1106151302

 

 

[한겨레]설계도면·시방서 첫 공개


다른층과 달리 30㎝ 작은창 채광억제·탈출방지 의도한 듯
조사실 문들 엇갈리도록 달고 천장 흡음판 달아 소리 막아
'공포 극대화 구조' 의혹 짙어…유명 건축가 고 김수근씨 설계


군사독재 시절 고문 수사로 악명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도면과 시방서(공사 순서를 적은 문서)가 처음 공개됐다.

1976년 완공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설계 단계부터 다른 층의 8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창문을 배치했다. 너비가 겨우 30㎝에 불과하다. 채광을 최대한 억제하고

탈출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 박종철씨와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고문을 당했던 곳도 이곳 5층 조사실이었다.

또 복도 양쪽으로 배열된 16개 조사실의 문을 서로 어긋나게 설계해, 마주한 두 조사실의 문을 동시에 열어도 맞은편 조사실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설계자가 건물 용도를 알고 그 용도에 맞춰 디자인을 적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실마다 내부에 욕조를 설치하도록 설계한 부분은 처음부터 물고문을 의도해 배치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들게 한다. 고은태

중부대 교수(건축학과)는 "당시 욕조라는 시설이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용도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계도는 다른 층에 없는 천장 흡음판을 4층과 5층에 설치하도록 했다. 고문 등으로 인해 5층 조사실에서 발생할 소음이 다른 층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미리 조처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실 천장에 달리는 전구의 형태·색깔·밝기까지 지정했다. 오창익 국장은 "평상시에는 형광등을 켜놓고 있다가 조사가 시작되면

피의자를 비추는 백열등만 켜서 공포심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창모 교수는 "과거 한국에서 조명 분야의 설계가 대부분

부실했는데, 조명의 색까지 지정한 시방서는 굉장히 꼼꼼하게 작성된 것"이라며 "건축가 또는 건축주의 의도가 치밀하게 반영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1986년 사망)이 설계를 맡았는데, 그가 일련의 치밀한 설계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국내 건축학계에선 '설계를 주문한 군사정권의 강압에 의한 것인지, 설계자 스스로 정권의 주문에 부응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21107084008216

 

 

 

두꺼운 철제 철문은 내부를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킨다

 

 

대공분실의 첫인상은 육중한 철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국장님 표현에 따르면) 자동차가 와서 부딪쳐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철문은 철문 안쪽의 세상을 바깥 세상과 완전히 분리시킨다. 밋밋한 색깔의 벽돌 담장은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에 밖에

서는 안쪽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지금은 철문의 왼편에 '경찰 인권센터'라는 현판이 걸려있지만, 조사실로 사용되던 당시에는 아무것

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지나치거나 그저 공장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피조사자는 건물 뒷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정문으로 출입하는 조사관이나 경찰, 관계자와는 달리 피조사자는 정문에서 우측으로 가면 나오는 뒷문을 이용한다.

 

공간분할의 무서움

 


남영동 대공분실은 당대 가장 유명했던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공간분할'이다.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도 될 공간을 벽과 문으로 분할하여 여러 개의 방으로 만드는 식이다. 공간분할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노리는 효과는 '공간감 상실', '공포감 조성' 등이라고 한다. 그것을 뒷받침해 주듯 분할된

공간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앞뒤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둡다. 지금은 출입문에 비상구등이 켜져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한번 들어오면 출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뒷문에서 이어지는 이 분할된 공간들을 통과하면서 피조사자

수차례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빛마저 차단된 공간에서 이유 모를 구타. 피조사자가 느꼈을 공포를 상상하니 끔찍했다.

 

위치감을 잃게 하는 나선형 계단

 

 

 

 

수차례 폭행당한 피조사자는 이 나선형 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까지 직행했다. 고작 두명이 어깨를 맞대고 겨우 올라갈 수 있는

넓이의 계단을 빙글빙글 올라가면 위치감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얼굴이 가려진 채 수차례 구타를 당하며 계단을 오른 피조사자들은

여기가 몇 층인지, 어디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각 조사실들의 위치와 구조는 철저하게 계산되었다

 

 

일반적으로 안에서 밖을 보기 위해 현관문에 설치되는 투시경이 이곳에서는 복도에서 취조실 안을 감시할 수 있게 바깥에 설치되어

있다. 피조사자들은 말그대로 도살장의 돼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투시경 디자인이 정교하다.

 


조사실은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긴 복도를 따라서 좌우로 똑같이 생긴 철문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조사실 복도로

들어오는 입구도 조사실 문과 동일하게 설계되어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 조사관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문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비상구등'이 달려 있지만, 당시에는 불빛이 없어서 운 좋게 조사실을 빠져나와도 복도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고

한다.



각 조사실 문 옆에는 조사실의 전등을 조작하는 스위치가 달려있다. 피조사자는 밖에서 불을 꺼주면 잠 들고, 불을 켜주면 일어나는

등 '빛의 자유'와 더불어 '시간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복도 양 옆에 지그재그로 배치된 조사실들은 문이 열리는 방향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배치해 놓았다. 이렇게 해 놓으면 설사 두 문이

동시에 열리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각 방에 있는 피조사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이렇듯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건축가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우선, 방에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었지만 칸막이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동시에 문쪽 천정 가장자리에 장치된 CCTV들이 눈에 들어왔다. 즉, 피조사자가 배변을 보거나 샤워를 하는 모습을 감시자가 전부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장치들은 피조사자에게 비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게 하여 피조사자의 내면 세계부터 무너뜨린다. 국장님 말씀에 따르면, 실제로 피조사자들은 처음 며칠간 배변을 참아보지만 결국 별 수 없이 카메라 앞에서 용변을 보게 되고, 그것에 익숙해지게 된다고 한다.

 

 

 

방의 벽면은 금속 성질의 흡읍판으로 되어 있다. 고문에 의한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이다. 또한 천정의 현광등에는 쇠그물이 쳐있어 피조사자가 자살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책상과 침대, 의자 등은 전부 바닥에 나사로 박혀 있다. 방에는 시계도 없고, 좁고 길다랗게 뚫린 창으로는 머리하나 지나가질 못한다. 따라서 피조사자는 지금이 몇 시인지, 몇 일인지조차 알 수가 없고, 앞서 설명한 나선형 계단을 걸어왔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물 몇 층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시간적, 공간적 감각을 박탈함으로써 피조사자의 정신세계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국장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발상의 잔인함에 치를 떨다가 문득 하나의 궁금증이 생겨났다. CCTV며 수세식 변기, 욕조, 침대 등이

지금은 흔한 물건들이지만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에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최신식 설비가 가능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그 정도로 정부가 이 사업(?)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방증이 된다.

 

김수근은 이 건물의 설계도를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건물이 완공되기 전 수없이 드나들었을 텐데.. 

 

http://www.cyworld.com/sweetpigbox/3017919

 

 

 

現문화 미래 이프 공동대표 유숙열 기자 기고문 中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고 합니다. 김수근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벽돌로 별장처럼

멋지게 지어진 그 집은 설계될 때부터 고문을 하기 위한 집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방마다 호텔처럼 욕조와 변기, 세면대,

침대가 갖춰져 있었고 천정의 사면 벽은 방을 감시하는 모니터 화면으로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에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머리도 나갈 수 없게 좁고 긴 3중 유리창이 쳐 있었습니다. 나는 그 다음부터 김수근이라는

건축가를 싫어하게 됐습니다.

 

그 방의 좁은 창문으로 보이던 바깥 풍경은 어쩌면 그리도 낯설었는지.... 비가 오고 있었고 멀리서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

치던 사람들을 보며 나만 혼자 세상과 유리되어 언제 그 세상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그런 막막한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빠졌는데도 세상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평화롭게 잘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가족도 알지 못하는 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나는 5일만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용산경찰서 유치장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5일 있다가 다시 서대문구치소로 옮겨져

20일 만에 검사의 기소유예 결정으로 석방되었습니다.

 

http://blog.ohmynews.com/feminif/453920

 

 


배우 박원상 프레시안 인터뷰 中

 

프레시안: 대공분실 세트가 아주 정교하게 지어진 것 같다. 얼마 전 대공분실 실제 설계도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영화를 통해 다시 보니 정말 그 공간의 분위기와 조명 등이 일종의 공포영화적 효과를 주더라. 직접 그 안에서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땠나.

 

박원상: 뉴스에도 나왔지만,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을 지은 분이 김수근 건축가다. 그분이 소극장 '공간사랑'을 만드셨지 않나.

고등학교 1학년 땐가 거기서 처음으로 소극장 연극을 본 다음 연기의 꿈을 키웠다. '공간사랑' 옆의 원서 공원도 참 좋아하는 곳이

어서 대학생 때 자주 드나들었는데, 김수근 건축가가 대공분실을 설계했다는 얘길 듣고…그분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 훌륭한

능력을…참 아이러니했다. 씁쓸하기도 했고.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jluke313?Redirect=Log&logNo=110150517878

 

 

 

출처 : …안방 TV가 빛나는 밤에…
글쓴이 : 황금잉여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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