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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국] 왜 영국은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을까?

Vaness™ ♡ 2012. 8. 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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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영국 아동들의 식생활

  • 글쓴이: 왕마귀
  • 조회수 : 855
  • 06.06.06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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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악마의 정원에서, 저자- 스튜어트 리 앨런, 역자 - 정미나, 출판사 - 생각의나무에서 부분 인용한 것입니다.



(글 퍼온이의 첨언: 위 사진은 해기스라는 우리나라 순대같은 음식이라네요)


오래 전부터 미식가들은 영국의 요리를 두려워했었다. 삶은 양배추며 푹 익힌 쇠고기, 또 대포알 같이 생긴 푸딩을 보라. 이 세상에 영국이 너무 익히거나 운치 없이 이상하게 해놓아서 망쳐놓지 않은 식료품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프랑스인들은 이를 유전적인 특징이라 믿었다. 다음은 1852년에 장 생타 아로망(Jean Saint Arrroman)이라는 학자가 한 말이다.





"영국인은 원래가 비프 스테이크와 플럼 푸딩(Plum Pudding)을 잔뜩 먹는 대식가로서, 마치 자신이 막 삼킨 가젤 때문에 거의 질식 상태에 있는 보아 구렁이와 같다. 이에 반해 프랑스인은 원래 절제할 줄 아는 민족이다. ...... 그래서 우리(프랑스인)에게 음식은 태양이자 좋은 날씨와 같으며 자연이 준 가장 귀한 선물이다. 영국인에게는 안개, 석탄, 플럼 푸딩, 우울, 파괴적인 병이다.“ 





이러한 견해는 뛰어난 영국 요리를 맛본 이들에게는 약간의 반향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하지만 다른 이론들도 있다. 가령, 역사가 스티븐 메넬(Stephen Mennell)은 프랑스가 요리에서 단연 월등한 것은, 루이 14세가 프랑스 귀족들에게 베르사이유 에서 자신과 함께 살자고 명령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루이 14세는 단지 반역심이 있는 귀족을 감시하고 싶었던 의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귀족을 한 지붕 아래 둠으로써, 그는 뜻하지 않게 식도락의 온상을 만드는 결과도 빚었다.










프랑수아 바텔(Francois Vatel)


그 안에서 한 무리의 요리사, 파티시에(patissier, 제과사), 소믈리에(sommelier, 포도주 감정가), 블랑제(boulanger, 제빵사), 시종장들이 식성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프랑수아 바텔(Francois Vatel)이라는 한 시종장은 생선 요리가 30분 늦게 나오자 칼로 자기 몸을 찌르기 까지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의 오트 퀴진(Haute Cuisine)이 탄생했던 것이다.


반면에 영국의 귀족은 궁전에서 지내도록 강요받지 않아 자신들의 영토에서 지내면서 더 격이 떨어지는 음식을 즐겼다. 생선이 늦게 나와도 괞찮았다. 그 사이에 삶은 쇠고기 두 접시가 더 나올 텐데 뭐가 문제인가.





이 이론이 영국에 진정한 고급 요리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끌리는 이론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소위 유년기라는 개념의 발견과 관련지어서 설명하는 다음의 이론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아이들이 어른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개념을 철저하게 신봉한 최초의 이들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과 엄격하게 분리해 웃기는 옷을 입히고 수준에 맞게 동화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또한 특별 음식, 즉 묵은 감자를 먹여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햇감자도 괞찮다. 하지만 묵은 감자를 뭉그러질 만큼 푹 삶은 것이 아이들 음식으로는 최고다.“ 


 


파이 헨리 채바스(Pye Henry Chavasse)1844년에 베스트 셀러가 된 자신의 저서 <어머니들이 읽어야 할 자녀 양육 지침서(Advice to Mothers on the Management of Their Offspring)에 쓴 글이다. 채바스는 열 살 미만의 아이에게는 아침으로 “되도록이면 만든 지 7일 된” 말라빠진 빵에 미지근한 우유를 부은 것만 먹이라고 훈계하기도 했다. 또 단 것은 ‘효력이 더딘 독약’ 이며, 이는 녹색 야채도 마찬가지라며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이 열 살이 넘으면 늙은 양고기(쇠고기나 돼지고기는 절대 안 되고)와 약한 맥주를 줘도 되지만, 앙파와 마늘은 절대 먹이지 말라고도 했다.


“고기, 감자, 빵을 소스가 거의 없게 해서 주는 것이 가장 좋으며, 다른 음식은 일절 주지 말고 그것만 주면 분명히 먹을 것이다.”



채바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벤자민 스폭(Dr .Benjamin Spock) 박사였으며, 그 시대의 중산층들은 그의 충고를 신앙처럼 따랐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유와 빵 부스러기, 밀가루를 넣고 7시간 동안 푹 끓인 묽은 죽으로 꾸역꾸역 배를 채워야 했다. 이튼 스쿨(Eton School )의 학생들은, 한 자비로운 졸업생이 학생들에게 매주 일요일마다 플럼 푸딩을 주라면서 유산을 남기기 전까지 1년 365일 내내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늙은 양고기와 감자만 먹었다. 프랑스의 학생들도 바게트를 진절머리 나도록 꾹꾹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들의 식단에는 야채, 계란, 생선이 4분의 1정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매일 포도주 반병을 마실 수 있었다. 프로방스에 1년 중 125일간 양배추 수프만 주던 기숙학교가 있긴 했지만, 이것도 영국의 식단에 비하면 잘 주는 편이었다.





아이들의 영양에 파괴적이라고 할 만한 이런 식의 방법은 감리교회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이론과도 완벽하게 맞아 들어맞았다. 웨슬리는 아이들은 신이 아닌 자연에서 즐거움을 얻으므로 “본성적인 무신론자”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지하며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그러한 본성을 억제시키는 한편, 항상 기운을 꺾어놓아야 한다고 권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음식을 못 먹게 하는 방법이 특히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식탁에서 ‘본성적으로 바라는’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잃도록 길들이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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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국은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을까?

  • 글쓴이: creios
  • 조회수 : 796
  • 08.07.14 11:20
http://cafe.daum.net/shogun/9xm/5822 주소 복사
 
 

다들 아시다시피, 영국은 "지지리도 요리 못하는 나라" "식재료를 망치지 않으면 다행"인 나라로 악평이 자자한 나라입니다. 뭐 영국인 본인들은 영국 요리를 그리 나쁘지는 않은 요리라고 생각한다지만......... 영국 이외의 나라 사람들 중에서 영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죠. (하지만 술안주로는 좋다고 하더군요. 피쉬 앤 칩스와 맥주 한잔, 그럴 듯 하죠.) 그래서 요리 하면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가 유명하죠. (특히 이탈리아 요리는 대단한 것 같더군요. 정말 맛있게 보였어요. 이탈리아는 요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을 듯.)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 왜 영국에서는 요리문화가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잘 이해가 안가서요.

 

 

처음에는 "옛날에 영국은 먹고 살기 힘드니까 요리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요. 영국은 남부 쪽은 평지로 되어 있어서 농사가 꽤 잘되는 것 같고, 또 소를 많이 길러서 고기도 많이 생산되었고...... 다른 지역보다 식량사정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말도 있더라구요. 예컨대 비스마르크가 영국에 유학하던 시절의 편지에는 "여기 사람들은 맨날 고기만 먹더라. 식량사정이 정말 좋더라"고 적혀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못먹고 못살아서 요리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아닌 것 같고..........

 

 

그럼 영국이 섬나라여서, 대륙 쪽과 소통이 잘 안되서 요리가 발전하지 못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더라구요. 일본 역시 섬나라지만 생선 요리나 기타 요리는 매우 발전해 있지 않습니까? (물론 고기 요리는 영 아니라지만) 그걸 보면 섬나라여서도 아닌 것 같네요.

 

 

근세 부터 세계를 주름잡던 대제국, 대영제국. 그런데 그 신민들이 먹는 음식들은 영........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라나? 왜 영국은 요리가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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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테로스™ 
제가 영국에서 유학하는데 영국 애들도 영국 요리 별로라는거 대체로 다 아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론 그냥 그 많은 자원들(소고기,양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등...)을 잘 활용하지 못한 예인 것 같네요. 08.07.14 11:41 
 
 앨런비 
기온에 비해 위도가 높습니다. 즉 재료부터 맛이 없다는 것(먼산) 08.07.14 13:53 
 
 
 
 jyni 
영국은 평지는 많지만, 기후가 좋질 못합니다. 특히, 영국의 서늘하고 안개가 많은 기후는 목축은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일조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곡물생산에는 정말 안좋죠. 이게, 식민지개척 이전에 영국이 프랑스에게 인구수에서 밀린 이유 중 하나죠 (지금은 거의 비슷하죠). 비스마르크가 유학갔을 때는 영국이 식민지에서 곡식이나 육류를 공급받던 시절이니, 상대적으로 식량사정이 좋을 때였죠. 2차대전때도 처칠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잠수함때문에 물자보급이 끊긴 상황이었고, 미국의 참전이전에 식량배급과 텃밭가꾸기 등으로 겨우 넘겼었죠. 08.07.14 13:55 
 
 
 
 매디벌 狂 
접대문화가 안발달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능. 영국이란 나라가 참 인간미 없게 살게 되버리기 딱 좋은게 겨울에는 2-3시되면 해가 져버려서 게다가 해양성 기후특유의 우중충한(습도높은) 겨울공기까정 겹쳐서 분위기상 왠만하면 대인거리 100미터 유지하는게 서로에게 좋고 여름에는 고위도라서 해가 더럽게 안져서 은근히 기분이 더럽기때문에 사람들끼리 잘 안친하죠. 외출하기에 별로 좋지 않은 기후적 특성땜시 영국인의 행복은 겨울엔 장작불앞에서 책이나 보는거 여름엔 커튼닫혀진 방에서 만사제끼고 부족한 수면 보충신공+간간히 책이나 들여다보기. 이런 개인적 성향에서 나오는 거라고 볼수도... 08.07.14 14:11 
 
 
 
 런던친구들 
4297번 왕마귀 님의 글에 힌트가 나와있군요. 이 외에도 영국 음식에 대한 글들이 쌓여있습니다. 08.07.14 18:56 
 
 
 人肉饅頭 
아시다시피 영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국의 요리학교도 프랑스만은 못하지만 영향력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왜 요리를 못하는 나라라고 불리는가에 대해서는 윗분님들 말씀처럼 영국의 기후적지형적인 영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선입견에서 나온 것 입니다. 영국요리는 중세시대만해도 알아줬었다고 하더군요. 영국요리의 질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한것은 영국이 점차 식민지강대국이되면서부터였습니다. 18세기이후 많은 영국인 인구가 해외로 이민을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영국본토에서 요리발달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1,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은 레이션제도를 도입했었고 08.07.14 20:39 
 --> 입닥제국 
레...레....레이션! 설마 모든 최소 필요 영양소 한끼를 공급하는 아주 더럽게 맛없는 화학물질![워해머40,000.... -_-....] 08.07.15 16:18 
 
 
 人肉饅頭 
기후적,지형적으로도 신선한 재료를 못 구할뿐더러 지속적인 전쟁과 인구이동 때문에 영국인의 요리에 관한 흥미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엎친데 덮친격 영국요리의 평판은 재밌게도 이웃나라 프랑스의 월등한 요리발달이 이루어지면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다양한 기후는 곧 다양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기회 주었고 주변국가와의 지속적인 무역이 요리산업발전에 큰 도움이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부터 프렌취쉐프들의 콧대가 높아져서 영국요리를 깔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영국요리는 맛없고 프랑스요리는 맛있다라는 선입견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08.07.14 20:40 
--> 피에르 
자고로 프랑스 요리의 발달은 프랑스 혁명 전의 18세기 대귀족들이 입맛을 위해 개같이 돈을 써서 이뤄진 성과물... 08.07.15 21:58 
 
 
 
 人肉饅頭 
하지만 어느 나라가 되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를 배출할려면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있어야합니다. 특히 다른나라의 문화를 수용할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하구요. 프랑스가 요리의 다양성도 결국은 주변국가와 많이 둘러쌓여져있었다는 이점도 작용도 합니다. 일본과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재밌는 비교가 되는데요. 일본음식이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있는 것은 꼭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선입견에서보다는 일본의 수용적이 면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일본은 고기요리가 많이 발달되지 못하다보니 한국의 불고기 같은 고기요리를 받아들여서 자신들이 새롭게 개발했고 결국은 일본의 야키니쿠(말그대로 불고기)를 만들었습니다. 08.07.14 20:41 
 
 
 人肉饅頭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민족에만 맞는 매운 음식을 즐기다보니 그다지 해외에서 큰 매력을 못 받고 있는 것이구요. 그리고 식민지시절당시 영국요리의 잔재를 보기 위해선 호주같은 나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호주 음식은 전형적인 심플한 'meat,vegetable and potato' (고기,야채와 감자) 이고 스낵으론 'fish and chips'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21세기가 들어서면서부터 영국도 자신들의 요리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많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영국요리사가 어쩌면 더 빛을 발하는 것도 그런 곳에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08.07.14 20:38 
 
--> 앨런비 
뭐랄까... 말은 좋은데 문제는, 실제로 영국요리가 맛없다는 것을 의심하던 사람들도 영국에 가서 먹어보면 그점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론(?)은 맞는듯 한데, 실제로 너무 맛이 없다보니 단순히 선입견이 크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듯 합니다. 08.07.14 21:36 
 
 
--> 노머드 
옛날 영어선생님 영국 어학 연수 다녀오고 나서 기후도 그렇지만 음식땜에 사람살곳이 못 된다고 ㅋㅋ;; 08.07.14 23:02 
 
 
--> 롱기누스 
실제 영국 여행을 했는데 로스트 비프 빼곤 진짜 최악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 음식들은 모두 맛있거나 먹을만 했는데 정말 먹을 맛 안나더라고요. 그리고 참고로 유럽 농담중에 이런 농담이 있다죠. 최악의 남자는 일본처럼 좁은 집에 살면서 기가 센 미국인 아내랑 같이 살면서 영국 요리를 먹는 남자라고.... 08.07.14 23:02 
 
 
--> 人肉饅頭 
모든 요리에는 상대성이라는게 반드시 작용합니다. 결국 맛이있고없다의 차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잖아요. 소위 맛있는 입만에 길들어진 사람들은 실제로 특정하게 만들어진 자기입맛에 기준을 두는거지요. 여기서 제대로 된 영국음식을 먹어본 사람도 없고 제대로 된 영국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지요. 단지 사람들이 정해진 선입견 속에서 사람들은 받아들일뿐이지요. 저도 몇년 전에 영국을 호주대학 다니면서 교환학생으로 3개월간 다녀왔었는데 롱기누스님 말씀처럼 맛있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국의 mvp 심플디시는 감히 프랑스요리사도 못따라간다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 08.07.15 00:03 
 
 
--> 人肉饅頭 
을것 같네요.. 음식에 만약 선입견이 없다면 우리가 맛있다 없다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영국음식이 단순하고 맛없다라고 단정 짓는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음식은 맵기만 하다라고 단정 짓는거랑 마찬가지죠.. 만약 영국요리에 대해서 평가해야한다면 그건 맛없다 라는 평가가 아니라 대중성이 떨어지는 음식이다라고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 신선한계란과 페이스트리로만든 포테토끼쉬를 소박한 케찹바른 포테토파이와 비교해서 맛없다라는 너무나 잔인한 평가라고 봅니다.. ㅋㅋㅋ 님들은 한국음식이 일본음식에 비해 외국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는게 한국음식이 맛없어서라고 보시나요?? 만약 아니라면 영국요리에 입장이 이해가시나요?? 08.07.15 00:46 
 
 
 -->노머드 
결론이 무척 애매하게 흘러가네요.. ㅋㅋ 08.07.15 10:38 
 
 
 
 김세빈 
피쉬엔 칩스는 안주가 아니라 식사인데... 그리고 영국 요리에... 고긴 정말 다 들어가는듯... 08.07.14 21:10 
 
 
--> 人肉饅頭 
고기는 항상 빠질 수 없는게 영국의 전형적인 British Cuisine 인데 프랑스사람들이 유난히 촌스럽다고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스칸디나비아,독일 그리고 영국 고기음식이 비슷한데요.. 보다시피 라틴보다는 켈틱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이건 요리공부하다가 안 사실인데요.. 고기가 듬성듬성들어간 고기스튜는 중세시대 때 영국에서 최초로 개발되었는데 프랑스에서 넘어온 허브가 더해지면서 맛이 깊어지다보니 나중엔 결국 유럽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구요.. 08.07.15 00:59 
 
 
 프랑켄 
전에 요리 채널에서 영국 여왕에게 대접할 요리 메뉴 만들기 프로젝트란 걸 봤는데.... 세상에 다 태운 조개비를 떡 접시위에 올려놓지를 않나 모양새도 괴상하게 해 놓고 일품요리라 하지 않나 정말 요리 실력이 뒤에서 최고 ㅋㅋ 그거 보다가 내가 요리해서 내놓으면 최고요리라는 소리를 듣게구나 하고 생각했죠 08.07.15 22:45 
 
 
 프랑켄 
그리고 기후가 안 좋아 재료 자체가 맛없으면 그걸로 요리는 이미 끝난 겁니다. 요리의 기본은 신선한 재료인데 기본인 재료가 개판이면 암만 조미료를 갖다 뿌린다 해도 맛이 안 삽니다. 그리고 영국 중세부터 음식 맛대가리 없기로 소문났습니다. 철학자인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교수로 일한 적 있는데 음식에 대한 평가가 '맥주는 물같고 와인은 식초였다'였죠. 그 뒤에 카사노바가 영국와서 음식 보고 말하기를 '영국 사람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ㅋㅋ 08.07.15 18:09 
 
 
 프랑켄 
그리고 지금 전세계에서 서로 자랑하는 대표 음식들은 예전 상류층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 대다수이죠. 잘 알려진 프랑스 요리는 태양왕 루이 14세 때부터 시작된 궁중문화 덕분에 크게 발전한 거구요.(뭐 원류는 메디치 출신 왕비가 들여온 이탈리아 요리이지만) 영국이 암만 전란이 많고 해도 딴 나라들도 평온했던 것도 아닌데 이건 좀 아니네요. 08.07.15 18:12 
 
 
 人肉饅頭 
다들 각자 나름대로 좋은 의견을 제시들 하신 것 같은데 크레이오스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유익한 도움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ㅋㅋ 08.07.17 13:59 
 
 
 Temuchin 
인육만두님이 영국 요리에 대해 잘 성명을 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한국 음식이 일본 음식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는건 지금 2008년에 와서는 전혀 아니지 말입니다. 물론 선두주자로서 일본음식 -회, 우동이라던지- 은 큰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후발주자로서 치고 들어오는 한국음식의 맛과 냄새-갈비냄새는 생선만 먹던 아이를 소고기의 아귀에 사로잡히게 했지 말입니다. 한국음식보다 냄새의 미를 잘 살린 이상한 음식들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색다른 멋은 거의 세계 대도시 어디에서든 찾아볼수 있고 또 불티나게 나가지 말입니다. 08.07.18 12:11 
 
 
 Temuchin 
한국음식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우리 집 안에서도 편히 30분만 투자하면 식당에서 먹던 바로 그맛을 재현해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강점인 이유가 회 같은 고유 일본음식이나 고급 서양요리는 집안에서 그 맛을 재현해내는건 그저 먹기(만) 좋아하는 일반인은 복제후 시식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음식은 진짜 말 그대로 뭐든지 많이 푹푹 퍼다넣고 붂고 끓이기만 하면 고급식당 그 맛이 바로 재현되니 덩달아 한인 대형수퍼마켓도 외국인으로 붐비지 말입니다. 외국에서 어디든지 허벌나게 잘팔리는 한국음식 세가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집안에서도 하기 쉬운 -짜장면, 불고기, 비빔밥-이 되겠습니다 ㄳ. 08.07.18 12:21 
 
 
 Shapirus 
짜장면이 정말로 일반인이 하기 쉬운 음식인지는 의문이군요. 짜장라면이나 3분요리라면 모를까-_-; 그리고 한식에도 가정에서 쉽게 만들기 힘든 요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집에서 감자탕이나 곱창은 못해먹으니까요. 이는 외국에도 물론 마찬가지일 겁니다. 비빔밥처럼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얼마든지 있겠죠. 우리나라는 외식문화가 발달해서 가정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간단한 요리도 식당에서 사먹을 수 있지만, 외국(특히 서양)은 대부분 외식을 한다면 패스트푸드가 주류이고, 제대로 먹을려면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되니까요. 이런 요리들은 집에서 만들기 어려울테고요. 아마 이런 차이인 것 같습니다. 08.07.19 16:27 
 
 
 creios 
답변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08.07.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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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은 빵을 구워먹지 않았다.
2008/08/06 오후 10:51 | 역사적 잡담

19세기 이전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자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것이 그 속에는 빠져있다는 것을. 바로 부엌이다.

물론 귀족이나 부르주아 이상의 저택에서는 부엌을 찾아 볼 수 있다. 부엌이라기보다는 전용주방이다. 빵을 굽기 위한 화덕도 있고 각종 요리를 할 수 있는 버너도 있는. 그러나 도시노동자나 농민의 집에서 그것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왜? 비싸니까.

밥을 먹는 우리야 물이 끓는 온도까지만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대략 100도 조금 넘는 온도만 유지할 수 있으면 물이 끓고 쌀이 익어 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빵을 굽자면 기본이 180도, 그것도 미리 예열을 해야 하고 또 상당기간 그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심지어 바게뜨 종류는 200도 이상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러자면 도대체 얼마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일까?

지금이야 에너지 과잉이라 집에서 작은 케잌 하나 굽는데도 얼마든지 오븐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값비싼 나무와 석탄을 때서 연료를 삼아야 했던 시절에는 그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더구나 나무를 하려 해도 거의 모든 숲은 국왕이나 귀족인 영주의 소유였고 그 숲에서 나무를 할 수 있는 권리도 영주에게 있었다. 물론 농민들은 제한적으로만 나무를 베어 쓸 수 있었고, 도시노동자들은 영주들이 소유한 숲에서 사들인 나무를 비싼 값을 주고 사서 써야 했다. 그런데 과연 그 비싸고 귀한 나무를 빵 하나 굽자고 써야 했을까? 아니 쓸 수 있었을까?

원래 중세 유럽만이 아니라 빵을 먹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빵을 굽는 화덕은 공공의 재산이었다.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빵을 구워먹는 사람들의 경우 마을 공동의 소유의 화덕에 모여 모두가 먹을 빵을 한꺼번에 굽는다. 그쪽이 아무래도 연료의 소모가 적으니까. 영주의 소유라서가 아니라 귀중한 연료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화덕을 함께 쓰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중세유럽의 장원의 경우 영주의 봉건적인 특권과 방앗간과 화덕을 짓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영주에게 그 권리가 독점되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생산이 부족하던 시대, 막대한 세금을 내고 나면 농민들에게 돌아오는 건 그나마 밀과 약간의 푸성귀와 가축에게서 나온 생산물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빵은 앞서 말했듯 마을 공동의 화덕에서 함께 구웠다. 그렇게 빵이 해결되면 남은 식재료들은 기껏해야 한 데 썰어 넣고 물을 부어 끓여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도는 주방 없이도 냄비 하나와 식칼 하나면 충분했다. 즉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부엌의 존재 자체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도시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도시는 나무를 할 수 있는 숲을 갖고 있지 못하니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일단 연료를 쓰자 하면 외부로부터 나무를 사와야 했고 그 비용은 당연하게도 장원의 농민들이 지불해야 하는 것보다 더 많았다. 밀 역시 당시만 해도 밀가루로 파는 것이 아니라 알곡 형태로 사다가 직접 가루를 내어 먹어야 했는데 그 역시 비용이었다. 

그래서 도시에서도 어지간히 부유한 경우가 아니라면 빵을 직접 집에서 구워 먹는 일은 드물었다. 아마 당시의 시대상을 다룬 소설등을 떠올려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도 집에서 빵을 구워먹기보다는 큰 화덕을 가지고 한꺼번에 대량의 밀을 사서 가루를 내어 한꺼번에 많은 빵을 구워낼 수 있는 전문적인 업자에게서 사 먹었다. 돈이 남아돌아 굳이 전문 빵집에서 사 먹은 것이 아니라 개인이 부담하기엔 그 비용이 너무 비쌌기에 빵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 당시 유럽의 도시의 주거환경도 큰 몫을 했는데, 당시 유럽의 도시의 집이라는 것이 주방을 따로 둘 만큼 넉넉한 편이 못 되었다. 도시면적은 한정되어 있고, 그런데 사람은 많고, 그렇다고 모두가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대개는 침실 겸 거실 겸 화장실로 쓰이는 한 칸이 전부였다. 물론 그곳에는 빵을 굽는 화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따로 요리를 하기 위한 시설도 버거웠고. 이것은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일본 역시 에도와 쿄토를 중심으로 매식문화가 발달하고 있었다. 집은 그저 들어가 자는 용도로, 식사는 밖에서 해결하는 그런 식이다. 

다시 말해 당시까지만 해도 가정요리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정요리라는 것이 가능한 계층이란 집에 주방을 만들 수 있는 매우 부유한 특권계층에 한정되었다. 그나마 중산층에서 집에 주방을 만들고 요리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이후부터, 석탄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생산기술의 향상과 제국주의침략의 결과로 막대한 부와 물자가 유럽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실상 유럽의 가정요리란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나마도 대부분의 경우 삶은 감자나 감자를 넣은 스튜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전근대사회에서도 에너지의 확보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러나 당시 연료로 쓰이던 나무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연료로만 쓰기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전략물자였다. 나무 정도는 풍족하게 썼을 것이라 여기기 쉬운 것과는 달리 결코 나무는 그렇게 흔하거나 쉽게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밥이 아닌 빵을 주식으로 삼은 탓에 그래서 당시 유럽 사람들은 더 높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빵을 먹기 위해서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내야 했다. 나무의 소비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 무엇보다 비싸니까 - 그러면서 빵은 먹어야 하는. 그런 과정에서 전문적인 빵집이 등장하고 그러한 필요에 의해 빵을 기점으로 외식문화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가정요리이든 전문외식문화든 거기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앞서 말했지 않은가. 볏짚이나 삭정이만 있어도 밥은 지을 수 있다고. 밥 지으면서 뚝배기 하나 아궁이에 얹으면 찌개도 끓인다. 물론 덕분에 19세기 말에 이르면 한양 인근의 산이 완전히 헐벗다시피 했지만 말이다. 같은 도시이면서도 한양에서는 부뚜막을 짓고 직접 밥을 짓는 것이 가능했던 탓이다.

참고로 중국의 경우는 이미 11세기, 북송 무렵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가 여럿 생겨나면서 심각한 나무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시인구가 늘고 에너지사용이 덩달아 높아지면서 더 이상 나무로만 에너지를 쓰기에는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석탄을 중요한 연료로 사용하게 되었고, 석탄을 사용하면서 불의 요리라 일컬어지는 지금 중국 요리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역시나 인구의 밀집으로 인한 주거환경의 열화와 에너지 효율과 비용의 문제가 중국에서도 매식문화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었던 셈이다. 

아무튼 에너지과잉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지금은 혼자 먹기 위한 아주 적은 양의 과자를 굽는데도 태연히 오븐을 쓰고 있다. 하긴 오븐만이 문제인가? 한겨울에도 난방 제대로 된 건물에 들어가면 땀을 삐질삐질 흘려야 하는데. 한여름에도 추워서 덜덜 떨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인데... 

어찌되었거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데 있어 가장 중대한 문제는 먹는 것과 그리고 태우는 것의 문제라 하겠다. 굶고는 못살고 불 없이도 못 사니까.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이야 뭐... 석유 다 떨어지면 한 번 생각해 볼까? 옛날 얘기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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